DNA Spiders in Boston
2014. 10. 31 ~ 2014. 11. 05

때는 10월 31일이었다. 전원 밤을 새고 피폐한 상태로 김해공항에 모인 우리는 캐리어를 부치고 당분간 마지막이 될 한식을 먹었는데, 공항식당이 흔히 그렇듯 값은 비싼데 맛은 별로였다. 그런 뒤 우리는 출국심사대로 향했는데, 이 과정에서 필통 속 커터칼을 빼는 것을 잊은 두 명의 칼이 탐지기에 걸려 압수당하는 사소한 해프닝이 있었다. 일부러 일찍 왔었기 때문에 출국심사를 거치고 나서도 시간이 제법 남았던 터라 면세점 구경도 하고 가족친지와 전화를 하기도 하다 일본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비행기에서 나온 도시락은 별로 맛이 없었다. 단맛의 계란말이가 인상적인 이 도시락을 먹고 체한 사람도 있었을 정도였다. 거기다 비행 도중 발생한 난기류로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리기까지 해서 몇 명은 멀미가 수면부족과 겹쳐 초주검이 된 채 나리타에 도착했다. 나리타 면세점은 별거 없어서 대체로들 쭉 돌아보고 마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미리 내려가서 각자 시간을 때우다 보스턴 행 환승비행기를 탔다. 13시간 고생의 장렬한 서막이었다.

출국 직전까지도 완성된 대본이 없었기 때문에, 발표자 두 사람은 비행기 안에서 교수님과 대본을 짜며 외우기 시작했다. 그것에 맞춰서 PPT도 조금씩 바꿔가며 힘겹게 외웠던 것 같다.

솔직히 발표 멤버 둘을 제외한 사람들은 비행기 안에서 잘 생각이었다. 밤도 샜고 그 전에도 한동안 잠을 충분히 자본 기억이 없어서 적어도 8시간은 잠으로 때울 줄 알았다. 그러나 비행기 내부는 매우 덥고 건조해서 더위에 약한 사람은 제대로 자기조차 힘들었다. 그렇게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기내식으로 나오는 음식만 받아먹고 마시며 우리는 비좁은 공간에 13시간을 갇혀있었다. 물론 이는 더위가 아니더라도 제대로 잠도 못잔 채 대본을 수정하고 외우기 바쁘던 발표 멤버 둘이 보면 한 대 때려주고 싶은 소리일 것이긴 하다(정말이다. 열심히 대본 외우고 있는데 옆에서 테트리스 게임을 하고 있었다). 어쨌든 우리끼리 쭉 붙어 앉았기 때문에 화장실 가는 데 눈치 안보인 건 그나마 다행한 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좁은 데 갇혀서 계속 주는 거 받아먹고 자기를 반복하고 있으니 사육당하는 것 같다는 한 명의 말에 우리는 굉장히 공감했다.

그리고 대망의 보스턴. 김해나 나리타공항과는 인종구성부터 다른 글로벌한 분위기였다. 흑인 백인이 전혀 튀지 않고 돌아다니는 장면을 보며 여기가 문화의 용광로라는 미국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입국수속을 밟는데 교수님이 입국심사관들이 엄청 고압적이니까 쓸데없는 말은 말고 단답형으로 대화하라고, 말 잘못하면 몇 시간이고 붙들려 있거나 더 나쁘면 한국 강제송환도 가능하다고 겁을 주셔서 전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예상 QnA를 열심히 연습했는데 막상 입국심사는 허무했다. 내용은 각자 달랐지만 대체로 간단한 질문에 대답한 뒤 지문을 등록하고 사진을 찍는 게 끝이었던 것이다. 전부 에이 뭐 간단하네 했는데 교수님이 복수의 비자를 가지고 계셨던 탓에 한참을 잡혀계셨다. 교수님을 기다리는 동안 만났던 백인 한 명이 우리를 보고 니하오~라 인사한 건 덤이다.

어쨌든 교수님이 오랫동안 잡혀계셔서 교수님의 지시대로 우리끼리 밴을 탔다. 우리는 지나가는 길에 MIT를 보며 감탄하고 보이는 실험실에 반가워하며 호텔로 향했다.

호텔에 들어가서 짐을 풀고, 교수님이 오시자 밥을 먹으러 나가 케밥을 먹었다. 케밥은 기마민족의 기상이 느껴지는 맛이라고 해야 할지 굉장히 이국적이고 날것의 맛인데 먹을수록 은근히 중독성이 있는 그런 맛이었다. 나온 김에 마트에도 들리고 대중교통 7일 정액권도 샀는데 이 과정에서 인상적이었던 게 거리에서 마주친 사람들의 분장이었다. 온갖 분장을 한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풍경에서 할로윈이 일반적이라는 미국의 문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날 밤은 전부 밤을 새다시피 하며 다음날 있을 Jamboree를 준비했다. 원래 백업용이라 대본을 외워야 했던 멤버는 현실적인 문제로 대본을 몇 번 읽어보기만 한 뒤 기각되고, 주로 발표를 맡은 두 명의 대본 외운 정도를 체크해주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나머지 둘은 주로 PPT 최종 수정을 맡았다. 물론 발표멤버 두 명이 밤새도록 대본을 외우며 연습했음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대망의 11월 1일, 그 아침이 밝았다. 우리는 호텔에서 제공되는 아침을 먹었다. 식사는 전형적인 영미식 아침이었는데 소시지는 짜고 사과는 푸석거렸지만 그래도 기내식보다는 전체적으로 훨씬 나았다. 나중에야 들은 거지만 미국 사과는 원래 그렇다고 한다. 어쨌든 아침식사를 마친 우리는 하버드로 향했다. 가면서 우리가 하버드에 있어!!라며 흥분했는데, 약간 부끄러운 짓이었지만 어차피 한국어를 알아들을 사람은 적었으므로 괜찮았다.

로비에 조금 있다가 Jamboree 시작이 가까워지자 강당으로 들어갔다. 주최자인 숀 더글라스 씨가 시작을 알리는 몇 마디를 한 뒤 Jamboree가 시작되고, 각국의 조들이 하나둘 발표를 했다. 그러나 우리 중의 대부분은 영어에 약했다. 알아듣기 어려운 발표에 뿌리 깊은 수면부족 및 장거리 비행까지 하며 쌓인 피로감도 겹쳐 몇몇은 그대로 졸아버리기도 했다. 그 와중에도 점심시간을 지나고 3시의 휴식시간을 지나 우리 조의 발표 시간이 코앞으로 닥쳐왔다. 참가한 팀 대부분이 실험을 해서 결과를 낸 데다, 발표를 위해 이것저것 많이 준비한 게 보였기에 우리 팀의 평범한 발표내용 자체만으로도 기가 죽은 감이 있었다. 게다가 긴장한 탓에 이틀간 열심히 외운 대본이 제대로 기억나질 않았다. 마이크를 쥐고 무언가 이야기 한 것 같은데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어있던 어느 순간에 발표가 끝나있었다. 발표자는 잔뜩 긴장해서 벌벌 떨었던 것 같은데, 그거랑 상관없이 대본 카드를 쥐고 마이크를 든 모습이 쇼 진행자 같았다. 곧바로 이어진 QnA에서도 언어의 한계로 좋은 질답을 하지 못했었기에 발표 후 모두들 아쉬워했다. 그 뒤로 약 2시간쯤 발표가 더 이어진 뒤 Jamboree의 첫날이 끝났다.

끝나고 나서보니 비가 내리고 있어 우산을 펼쳐든 채 우리는 northwestern 빌딩을 나섰다. 만지면 하버드에 다시 오게 된다는 전설을 가진 존 하버드 동상의 발에 손을 얹은 채 단체사진도 찍고, 하버드 기념용품점에서 쇼핑도 한 뒤 저녁으로는 베트남 음식점에서 쌀국수와 월남쌈을 먹었다. 호텔에 돌아가서는 호텔 내의 바에서 Blue moon, Harpoon IPA, Sam Adams 등 생소한 이름의 생맥주를 마시며 즐겼다. 발표에 아쉬움이 남긴 했지만 후회보다는 모든 것이 끝났다는 후련함이 더 커서 그래도 일정을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다음날 Jamboree에서 나머지 팀들의 발표와 시상식이 있었다. 팀들의 발표는 언어의 장벽으로 여전히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어제보다 덜 피곤하니 훨씬 눈에 잘 들어왔다. Bronze 상을 받고 기념사진을 찍을 때, 1년 간 열심히 준비해온 모든 프로젝트가 끝났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시상식까지 끝난 뒤 우리는 호텔로 돌아가 체크아웃을 했고 2팀으로 나누어 택시를 타고 게스트 하우스로 이동했다.

이어서 우리가 간 곳은 보스턴 시내의 Copley square였다. 치즈 케이크로 유명한 패밀리 레스토랑인 Cheesecake factory에서 점심과 후식을 먹은 뒤 각자 쇼핑을 위해 돌아다녔다. 이날 Kiehl’s, Loccitane, Banana republic, Victoria secret, Sephora 등의 매장을 구경했는데, 한국에서 사는 것보다 가격들이 많이 저렴해서 신나게 쇼핑을 했다. 그런 뒤 숙소에 도착한 우리들은 한국에서 가져온 화투로 고스톱을 치거나 보드게임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 다음날에는 연구소를 돌아보았다. 가는 길에 하버드 의대를 보고 세계 최고의 소아 전문 병원이라는 하버드 소아 병원을 지나 연구소로 향했다. 그런데 중간에 일정이 꼬여 11시부터 1시까지 2시간 정도를 푸드코트에서 보냈었다. 각자 먹을 것을 사서 시간을 때우다가 막바지 30분 정도는 푸드코트 근처의 슈퍼에서도 간단한 쇼핑을 했다.

점심으로는 오성환 박사님과 함께 피자를 먹었는데, 종업원의 속사포 서비스가 굉장히 인상깊었다. 점심을 먹은 뒤에는 박사님이 연구하시는 랩실에 방문했다. 위장의 미생물들이 만드는 물질들이 면역체계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질량분석 등의 분석 화학적 방법으로 조사하는 것이 박사님의 주 연구 분야로, 실물 기기와 함께 역상 크로마토그래피로 나누어진 화학물질이 질량분석기에서 분석되는 메커니즘과 함께 결과가 모니터에 어떻게 나타나는지 상세하게 볼 수 있었다.

다음으로는 Wyss 연구소에 들렀다. 여기서는 간, 골수, 폐, 신장, 심장 등 여러 장기의 세포들을 실제 신체 환경과 최대한 유사하게 만들어 재현성을 높여 실제 장기와 비슷한 반응을 나타내는 인공장기 칩을 개발하고 있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인공장기 칩은 약물을 in vivo로 실험하기 위한 것으로, 완성이 된다면 의학 분야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TEM 기계와 같은 비싼 기기들을 직접 보는 등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연구소 탐방을 마친 이후에는 Fenway 쪽으로 가서 미국 할인점 체인으로 보이는 Marshal에서 쇼핑을 했고, 밤이 되자 교수님의 제안으로 근처 마트에서 레드 와인과 샴페인, 나쵸, 나쵸 소스 세트, 브리 치즈, 청포도 등을 사왔다. 샴페인은 마지막 날, 바이오모드 무사 완료 기념으로 먹기 위해 사와서 냉장고에 넣어놓았고 이날은 레드와인과 안주들을 함께 먹었다. 원래 교수님은 무난한 월넛 치즈를 사려 하셨는데 마트에는 그게 없어서 제일 일반적이라는 브리 치즈를 사셨다. 근데 그것도 취향 타긴 했는지 우리 5명 중 2명만 먹었다.

체류 마지막 날에는 제일 먼저 교수님이 맛있다고 하신 패스트푸드를 먹으러 Kenmore 쪽으로 갔다. 한 명의 표현을 빌리자면 앞으로는 맥도날드나 롯데리아의 버거는 못 먹겠다 싶을 만큼 맛있었다. 특히 미디움으로 구운 소고기 패티와 갓 튀겨 나온 감자튀김이 인상적인 맛을 자랑했다. 다음으로는 대형 문구 할인점에 가서 역시 쇼핑을 즐겼다.

전철을 타고 Copley역까지 간 뒤 팀을 나눠 2명은 시내에서 쇼핑을 하러 갔고, 3명은 벼르던 세계 4대 박물관 중 하나인 Museum of Fine Art로 향했다. 운이 좋게도 우리가 보스턴에 머무는 기간 동안 MFA에서 고야전이 열리고 있었다. 스페인의 유명한 화가인 고야는 전쟁과 중병을 앓은 뒤 그 그림의 분위기가 굉장히 파괴적이고 어둡게 변했다. 그림은 주제별로 전시되어있어 그 변화를 뚜렷이 볼 수 있었다. 이 관람에서 두 가지 아쉬운 게 있었다면 하나는 다시 Copley square에서 팀을 합치기로 해서 일정이 촉박했다는 것과 그림 옆의 설명이 영어라 빠르게 읽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런 걸 감안해도 고야전은 충분히 좋았다. 그리고 깨알같이 시간을 아껴 상설전시 중 고대 이집트 전시전까지 관람하고 왔으니 짧은 시간을 나름 알차게 즐긴 셈이다.

시내로 쇼핑을 간 2명은 자유 시간을 만끽하던 중 예쁜 화장품 가게 직원을 만났다. 직원이 나눠주는 샘플을 받고, 매장에서 화장품에 대한 설명을 열심히 해주셨지만 안타깝게도 말이 너무 빨라 알아듣기 어려웠다. 샘플만 받고 그냥 가기 미안해져 직원이 한 눈을 판 틈을 타 나오려했지만 직원이 좋은 제안을 하겠다며 다시 우리를 설득하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기가 빨리는 듯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결국 화장품 매장을 나와 다시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는데, 돌아다니던 중 샘플을 받아가라는 매장 직원의 소리에 빠른 걸음을 하고 지나갔던 기억이 있다. 그 후 한국에 있을 가족을 위한 선물을 사기 위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보스턴을 누볐다.

그 뒤 우리는 다음 일정을 위해 Copley 역에서 모두 모였는데, 아침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던 한 명이 먼저 돌아가 쉬겠다며 이탈해서 일행은 4명이 되었다. 다음 목적지인 퀸시 마켓으로 향하는 도중에 초콜릿 전문 가게에 들려 스위스 수제 초콜릿을 싼 값에 살 수 있었다. 직원이 서비스라며 하나씩 쥐어줬는데 굉장히 달고 진했다. 이후 지하철을 타고 목적한 역에 내려 역 주변에 있던 승무원에게 길을 물어보았는데 go straight and turn left. 짧은 영어 실력에도 알 수 있도록 설명해 주어서 쉽게 길을 찾을 수 있었다. 걷던 도중 거리에 세워진 동상과 사진을 찍었는데 이때 한명이 굉장히 현지인다웠다는 것은 굳이 숨기지 않겠다. 그 뒤로 나타난 광장에서는 길거리 공연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날의 마지막 공연이라며 슬슬 시동 거는 모습이었는데, 일정상 끝까지 보지 못했던 것이 아쉽다. 목적지였던 퀸시 마켓은 이마트 같은 하나의 단일 상점이 아니라 여러 개의 상점들이 하나의 공간 안에 모여 있는 일종의 시장이었다. 나열된 물품들을 보아하니 현지인을 대상으로 하기도 하지만 보스턴 관광객을 주요 대상으로 하여 기념품을 파는 곳도 많았다. 덕분에 한국보다 훨씬 저렴한 양키 캔들을 제외한 나머지 물건들은 바가지를 썼다는 기분이 들었다.

저녁으로는 교수님께서 알려주신 랍스터 가게로 향했다. 항구도시인 보스턴인 만큼 해산물 가격이 저렴하여, 한국에서 먹지 못했던 랍스터를 먹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늦은 시간이라 피곤했지만 랍스터를 먹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가게로 향했다. 가게로 향하는 길에 버클리 음대를 볼 수 있었다. 어두워서 건물이 잘 보이진 않았지만, 세계 최고의 음대 중 하나를 보았다는 것에 기분이 들떴다. 랍스터 가게는 전체적으로 조명이 어두워서 낯설었다. 주문을 위해 테이블 담당 웨이터를 불러야 하는데 아직 미국식 식당 예절에 적응을 못했던 터라 고생을 했다. 그나마 우리 중 가장 영어를 잘하는 팀원이 있어 수월케 메뉴를 추천받아 랍스터를 먹을 수 있었다. 추천 받은 메뉴는 짭쪼름한 소스를 곁들여서 나오는 랍스터 요리였는데 불우한 금전적 문제로 네 사람이 2파운드짜리 한 마리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후식으로 쨈 혹은 시럽 같은 바나나를 곁들인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약간 허전한 위장이었지만 예정대로라면 숙소에서 샴페인을 먹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만족하며 숙소로 돌아가자 교수님의 깜짝(하지만 오는 도중에 이야기를 들어서 깜짝이 되지 못한) 선물로 컵라면이 있었다. 며칠 간 매콤한 음식을 먹지 못했던 우리들은 기뻐했다. 컵라면을 먹기 전에 우선 전날 넣어둔 샴페인을 마셨는데, 안주는 전날 먹다 남은 나쵸와 치즈, 그리고 파인애플이었다. 그리고 컵라면을 야식으로 먹으면서 미국에서의 마지막 밤이 저물었다.

그리고 출국 날, 아침을 먹은 뒤 나선 우리는 패기롭게도 짐을 끌고 지하철을 타고 공항까지 가려 했으나 곧 그게 생각처럼 만만하지 않다는 현실을 10분 만에 깨닫고 택시를 불러 타고 갔다. 13시간짜리 비행을 만만하게 여겼다가 전부 고생했던 탓일까 모두들 반팔에 츄리닝을 챙겨오는 등 다들 장거리 비행을 대비한 흔적이 보였다. 올 때와는 달리 전부 떨어져서 앉은 터라 옆에 모르는 외국인들이 앉아서 화장실을 가거나 움직이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그래도 철저한 준비 덕분에 보스턴에 갈 때보다는 대체로 수월하게 장거리 비행을 버틸 수 있었다.

돌아갈 때도 나리타공항에서 환승을 했다. 우리는 그동안 공항에서 라멘을 먹었는데, 공항 음식은 비싸고 맛없다는 진리만 재확인했다. 비가 오던 나리타공항을 뜨는 비행기에 우리는 몸을 실었고, 11월 6일 밤 9시에 드디어 대한민국의 땅을 다시 밟을 수 있었다. (fin)